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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나만의 돋보기/이벤트용 서평

<서평>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공모전 제출용.ver)

책 표지

 

*호머 헐버트 박사님의 성함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지나가듯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였습니다. 일본제국이라는 무서운 열강에게 잡아먹힌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자의건 타의건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신 외국인들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었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수상을 도우며 일본과 싸우던 장개석 중화민국 총통,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들의 법정에서 곤혹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던 후세 다쓰지 판사님, 저 유명한 언더우드와 석호필(스코필드), 배설(어니스트 베델)도 있었죠. 일본에 의해 추방당한 셔우드 홀 선교사님도 있고요. 그에 비해 헐버트 박사의 성함은 정감이 가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이질감이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그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거든요.

이 책의 저자이신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님이 정리하신 자료를 읽고 나니,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다른 외국인 운동가분들도 소중하고 대단한 업적을 남기셨지만 그 중에서도 헐버트 박사님의 노력은 가장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저자 분이 느끼신 자긍심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험난한 19세기와 20세기였던 제국주의 시대(‘벨 에포크’ - 유럽의 중산층들에겐 영광과 기쁨의 시대로 인식되겠지만, 그들의 지배를 받는 수많은 약소국들에겐 절망과 공포로 여겨지던 시대였으니)에서 조선-대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이타심이 넘치는 외국인이셨다는 점일 겁니다. 무엇보다 저자 분께서 단순히 헐버트 박사를 미화하기 위해 창작한 것이 아닌 지금까지 남아있는 헐버트 본인의 회고록과 편지를 읽어 나가는 것이 이야기 흐름의 중심이라 볼 수 있어요. 그러므로 이 책은 헐버트 박사가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그리고 어떤 행적과 업적을 남기셨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즉 책의 상당 수 자료는 헐버트 본인과 그와 관련된 가족, 친척, 한국인 독립 운동가들의 증언이 대부분이라 헐버트 박사 본인의 성격을 확고히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그 역시 감리교 선교사이자 미국인 백인이었기에, 자신과 조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 사람들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다행이 그런 관점으로 헐버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허나, 당시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오리엔틸리즘이라는 동양적 환상을 기반으로 생성된 ‘시누아즈리(중국에 대한 환상)’와 ‘자포네스크(일본에 대한 환상)’ 사상의 영향력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러시아와 청나라를 쓰러뜨린 (비록 영국과 미국의 지원이 있었고 자칫하면 패배할 뻔했지만) 공로 때문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호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겠죠. 그 과정에서 일제에게 잡아먹힌 조선 왕조 = 대한제국에 대해선 경멸적인 시선을 보인 것도 당연하겠고요. (이 책에선 대한제국이 이런 모멸적인 취급을 받은 것이 단순히 서구열강의 횡포뿐 아니라, 조선=한국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당대 조정과 지식인들의 책임도 있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비판합니다) 헐버트 박사께선 대한제국의 멸망을 목도하시고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수많은 열강의 외면 속에서, 자칫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끝까지 노력하였고 실의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전파하신 점에서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일본 문화에 감화되어 귀화한 라프카디오 헌(일본명 고이즈미 야쿠모)이나 과거 조선 왕조에 귀화하신 네덜란드의 사략선장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한국명 박연) 그리고 영화 속 인물인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 분)처럼 그 나라에 푹 빠졌다고 밖에 볼 수 없겠어요. 매우 특이한 사례인 셈이죠! 물론 헐버트 박사는 베델이나 스코필드처럼 귀화까진 안 했지만 오히려 그들보다도 더욱 더 노력하신 점에서 더욱 놀라운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호머 헐버트 박사가 눈여겨 본 조선의 문화유산들은 지금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요소가 있겠으나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거나 자국을 폄하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겐 시시하고 초라하게 볼 수도 있는 조선 왕조의 문화유산들이었습니다.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20대 경제 강국으로 불리는 2020년대에도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하물며 더욱 무시무시하고 어지러웠던 19세기 말 조선에서 생활하시던 한 외국인 선교사의 눈과 마음에서 본 조선 문화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나 대단했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야할 요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제게 흥미를 느끼게 한 요소는 책의 초반 부분에서 언급된 ‘헐버트 박사가 조선 땅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이야기’였어요. 비록 근대화가 외세(그것이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일본까지)에 의하여 일어났더라도, 여기엔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라 부를 수 있는 ‘육영공원’을 설립하려다 현실적인 문제(자금, 관리의 부패 등)를 겪고 끝까지 학교 설립을 이어가지 못한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으로라도 한국의 교육제도를 개혁하려고 노력한 점이 감명 깊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조선 말기를 판단하는 기준점은 ‘뭘 해도 안 될 운명’, ‘어차피 망했어야 할 나라’와 ‘노력은 열심히 했으나 열강이라는 외세가 모든 것을 망쳤다’라는 관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헐버트 박사의 기록은 저주스러운 자학을 최소화하고 타국에 대한 증오와 지나친 피해망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면서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여기서부터 구한말과 독립운동시기의 유명한 인재들이 등장하는 점에서 헐버트 박사의 혜안과 인맥, 그분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존경하는 구한말 인물은 김홍집과 주시경이였습니다. 그 이유는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하고 백성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강인한 정신을 김홍집을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며 주시경의 경우, 오늘날 한글을 있게 한 가장 큰 이유라 판단했기 때문이었죠. 오늘 날을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한글을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세 가지 이유 중 첫째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요,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동아시아의 선진국이자 지역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우리의 것을 어느 정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세 번째 이유로는, 그 전까지 조선의 지식인들이었던 양반들에게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던 한글이라는 문자를 백성들이 더 쉽고 편하게 쓸 수 있게 노력한 주시경 선생이 계셨던 덕이겠죠. 더 놀라운 것은 그 주시경 선생에게 일자리를 주고 그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헐버트 박사라는 것입니다! 헐버트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한제국의 교과서인 ‘사민필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 조선은 분명 세종대왕이라는 훌륭한 임금이 자국민들을 위해서 과학적이고 위대한 문자를 만들어냈는데 ‘양반’이라는 중국을 사랑하는 위정자들이자 바보들은 그 한글을 무시하고 제대로 써먹지 못하여 한국의 지식문화는 정체되었으니 이를 어찌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입니다. 누군가는 이것도 헐버트가 조선왕조를 모르고 함부로 판단한 맹목적 비난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점에서 저만의 생각을 남기고 싶습니다. 요즘 온라인 세상과 오프라인 세상을 합쳐서 인류 역사의 재평가 운동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엔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있다고 보여요. 이 중, 조선 왕조에 대한 재평가는 사회 분위기 상 부정적인 재평가는 주류 여론이 되기 힘든 점도 있어 다행으로 여기지만(이는 조선왕조를 비난하면 자동으로 일본을 긍정하는 인식이 엉뚱하게 엮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거대로 조심해야할 문제입니다) 조선 시대의 어마어마한 기록문화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내릴 수 없는 예외 사례를 제시하기에 함부로 이런 자료들에 일희일비할 수 없는 점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글의 옛 이름인 ’언문‘이라는 단어는 멸칭이 아니며 많은 양반들이 한글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었고 조선 지식인들이 한글을 억압하고 한문만을 고집했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다’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헐버트 박사가 기획한, 그것도 무려 대한제국 최초의 교과서가 됐던 사민필지에선 육영공원을 운영하다 좌절한 사례를 겪은 헐버트의 하소연과 주변 관리들의 부정부패 실태와 근대식 교육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 그리고 그 밑에서 배움을 다지던 많은 제자들(그 중엔 앞서 말한 주시경 선생도 있었고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초대 부통령 이시영도 있었으며 무시무시한 매국노 이완용도 있었죠)도 스승이 겪던 고충을 함께 느꼈을 것이기에 이 책은 “조선왕조는 한글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재평가에 찬물을 끼얹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경우엔 헐버트 박사가 외국인이고 나름 우리나라를 위해서 과장하고 미화한 발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시 헐버트를 비롯한 대한제국 초기의 서양인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19세기 말 대한제국 안에선 여전히 한글을 고집하는, 모화사상이 가득한 조선 지식인들이 상당 수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고 이것은 이후에 현대까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적인 부담감이 될 수 있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조선 후기에 잠깐 한글을 장려하는 움직임이 중인 계층들이나 몰락한 양반들에게 있었을지 몰라도 19세기 말엽이 되면서 다시 조선 지식인들이 한문에만 집착하는 경직된 사람들이 다수가 됐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족이 길었지만, 굳이 자국우선으로 생각하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헐버트 박사의 입장으론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조선의 교육개혁이 급하며 이를 위해선 한국에서 자생한 훌륭한 문화(한글 등)를 사랑하는 교육을 시켜야한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조선왕조의 모화사상, 소중화사상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을 것이며 개인적으로도 동감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의 내정간섭도 그렇고 헐버트가 초반에 조선왕조에서 보인 아쉬운 감정은 책에선 그리 심각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헐버트 박사의 일본제국에 대한 투쟁에 있기 때문이죠! 어찌됐건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계속 오뚝이처럼 일어서며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던 헐버트 박사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헐버트 박사 개인의 고백과 저자이신 김동진 회장님의 주장을 비롯하여 이 책에서 구한말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는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일제와 서구 열강이 모든 것을 망쳐서 우린 불행한 역사를 걷게 됐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이 관점은 사람에 따라 그것을 더 건설적인 희망으로 풀어내기엔 매우 힘든 난이도라 생각 듭니다. 고종 황제와 구한말 지식인들의 안타까운 오판도 역사적인 진실이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잔혹한 행동도 진실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나치게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은 더욱 피폐해지기에 최대한 미래세대를 생각하며 결론을 내려야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헐버트 박사는 타국의 군주였던 고종 황제를 변호하며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점(이에 대해 최근에는 대한제국이 서구열강이 아닌 러시아편을 들어서 멸망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고, 무슨 선택을 해도 당시 대한제국은 멸망당할 운명이었다는 주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후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과거사 해석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선 ‘우리 주변의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 우리는 변할 수 없다’는 타율적인 인식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이건 저 개인의 의견이므로 얼마든지 비판을 받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에서 감동을 느꼈으며 헤이그 특사(흔히 특사 분들이 네덜란드까지 가서 온갖 음해와 모함을 당하고, 절망만 가득 가진 채 돌아왔다는 식으로 해석하죠) 3인방을 도운 사람도 정황상 헐버트 박사가 유력하다는 자료도 흥미롭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헐버트 박사가 겪은 좌절 정도의 비극을 맞이할 경우, 폐인이 되거나 세상에 대한 증오를 품고 스스로 잠적하는 등의 정신붕괴를 겪을 법 한데 그분의 경우 그러지 않으셨던 점이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힘으로 이겨낸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반드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계속 간직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끊임없이 외교적으로 한국을 돕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해외의 한인 청년들에게 ‘낙심은 할 수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보자’라고 다독여주시기도 했던 점에서 저는 헐버트 박사를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기 위해 결국 일본제국의 신민이 되기로 한 독립 운동가들도 있었고 대한제국 패망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기 위해 일제라는 새로운 환경에 몸을 던지는 일이 다수였는데 헐버트는 그러지 않았던 것! 이후 일본제국이 끝없는 욕심으로 2차 대전을 일으켰고 스스로 파멸했고 한때 일본을 찬양하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위선을 밝혀내고(이는 어쩌면 외교사적으로 시어도어 최대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동료 일본이 오늘의 적을 만든 것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허용한 루스벨트 개인의 선택도 있었으니까요) 전임 대통령이 틀렸음을 입증한 프랭클린과 해리의 결단으로 미국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반격했고 그 후 우리나라는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외교적으로 노력하신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만 실제로는 어떠한 외교적 인정을 받지 못한 임시정부(심지어 헐버트 박사와 이승만 전 대통령조차 열강들의 외면에 충격을 금치 못했으니)의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책에선 이념갈등이 내분의 원흉이라 보았지만 굳이 이념갈등만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1920년 들어서, 이미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 ‘무력으로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세력’도 무기력하게 사라진지 오래였고 이런 사건들을 통해 이념갈등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후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이 부분을 너무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헐버트는 (미국인에겐 영웅중의 영웅이지만 구한말 고종황제 입장에겐 공포의 대왕 그 자체였던)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진실투쟁에서 승리한 것(이 책에선 루스벨트를 굴복시켰다고 표현하지만 정황상으론가 지나친 자화자찬적인 서술도 느꼈습니다. 허나 시어도어가 일제를 좋게 생각하여 한국을 버렸다고 자백한 자료를 확보한 점에선 진실을 밝혀낸 진정한 학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과 누가 보면 무의미한 저항이나 다를 법한 행동을 일생을 거쳐 노력한 점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독립운동가 시절의 이승만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도와 끝까지 미국 조야에서 외교 독립운동을 지속했던 점에서 정치적으로 모함을 받고 있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승만’을 공격하는 것을 방어하고 오히려 그것을 상쇄하는 증거가 호머 헐버트 박사의 존재 그 자체가가 될 수 있겠습니다!

물론 3.1운동을 ‘일본을 무찌르지 못해서 혁명이라 부르지 못한다면 그건 지엽적인 것으로 밖에 혁명을 생각 못하는 것이다. 이 항쟁은 제국이 아닌 민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개인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개인의 행복 의지를 세계로 넓힌 운동이니 스스로 일어난 민주 혁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라는 저자분의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나 전체적으로는 동의할 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이승만 대통령도 독립운동가 시절 미국에서 3.1 운동을 기억하며 혁명(Revolution)이라고 높이 평가한 점과 그 이승만이 상해임시정부의 전 단계인 한성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말도 부정해야 하는 맹점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아무리 역사적으로 국제사회가 냉혹하다고 하지만 외교적으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는 중화민국(대만)에 대한 우리나라의 태도나 전 세계의 미승인국 중 중국과 러시아랑 친한 미승인국에 대해선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를 볼 때 모든 역사적 관점은 ’당대의 현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독립운동가가 바라던 주권국가 대한은 현재 우리가 사는 시민사회가 아닌 고종황제 혹은 양반들이 부르주아처럼 살아남아 신민들을 통치하는 오스트리아나 독일, 오스만, 러시아 같은 체제가 아니었을까’하고 두려워하는 시선이 극소수나마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한 조선 사람들이 추구하던 진정한 자유는 ‘그냥 일본이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이미 그 때부터 ‘2020년대 수준의 현대 시민사회’를 꿈꾸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문제입니다. 모든 전근대나 근대 초기 사회의 한계성을 조금씩 밝히는 상황을 존중해야하지 않을까요? 흔히 나치 독일만이 장애인을 학살한 정책에 대해 전 세계가 맹비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동시대 미국과 영국 같은 연합국에서도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나빴다는 점을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서구 열강들의 사회적 인식도 매우 안 좋은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발달했는데 당시 조선 왕조 - 옛 대한제국이라고 다를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한편으론 미국인 선교사라는 지위를 적극 활용하여 대한제국이 병탄당한 후 일제가 빼돌리려 했던 ‘경천사 10층 석탑’의 행방에 대한 추적을 지속하였고 이를 당시 세계 여러 언론들에 투고하여 일본의 한국 문화재 강탈에 대한 고발을 한 점도 그분에 대한 존경심을 돋게 합니다. 일개 개인의 신분이었음에도 일본 제국이라는 당대의 무시무시한 열강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던 헐버트 박사님의 지위와 호소력 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독후감을 마저 이어가자면, 초반에 언급되는 사람이 주시경 선생이고 중반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고종 황제라면 후반에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자주 언급됩니다. 사진에서도 헐버트 박사와 가장 많이 동행한 독립 운동가는 이승만으로 보였습니다. 그나마 미국 정계의 뒷마당에서 헐버트 박사와 함께 미국 정치인들에게 한국 독립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파하여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 초기 역사를 이끈 점은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느꼈습니다.

헐버트 박사님의 불행은 좌절의 연속으로 생고생을 하여 ‘식민지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재탄생하는 기쁨을 눈앞에서 겪으심에도, 그 때엔 이미 돌아가시기 직전이라 유서도 제대로 쓰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야위셨다는 점과 결국 고종 황제의 내탕금을 되찾지 못한 점, 마지막으로 스스로 한국이 분열되어 버린 점을 지적하고 돌아가신 점이었어요. 그는 분단의 원인을 일본으로 보았습니다. 원론적으로 보면 러시아와 일본이 쟁탈전만 벌이지 않았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한편으론 헐버트 박사와 안중근 의사조차 그 무시무시한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도중에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길 바라고 있었고, 제정 러시아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는 역사적 증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일반 조선 사람들도 대부분 갖고 있던 인식이었으며, 이를 통해 19세기 구한말은 사실상 모든 나라가 적이었다고 보는 시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어째서 우린 노력해도 망할 수밖에 없었을까 21세기에 이런 일을 다시는 겪으면 안 되겠다. 그게 반복되면 지금 사는 내 인생과 주변 사회 그리고 우리 미래 세대들이 겪을 인생은 끝장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며 생산적인 희망을 품고 자신의 실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책 초반에는 암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만 가득 할 것 같아 읽는데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후 그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신 헐버트 박사의 진면모를 알 수 있어 재미있게 읽어나갔습니다. 이 책의 저자분과 헐버트 박사의 행적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신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분들의 노력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끝으로 헐버트 박사와 같은 살신성인의 마음을 가진 정의로운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귀재가 되는 시대가 오길 기대하며 이번 독후감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11월 25일
차가운 겨울바람을 뒤로 한 채 헐버트 박사의 여정을 새긴 모니터 화면 앞에서...

 

 

*감명 깊은 책을 읽은 것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2장의 일러스트를 그렸으며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관계자분들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한다. 수상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이라도 받아주길 바라며...

 

 

“헐버트 박사의 한국 사랑”    (주변인 : 시계 방향 순으로 고종 황제, 도산 안창호, 우남 이승만, 헤이그 특사 3명, 주시경)

 

“독립운동의 우정”   (헐버트 박사와 고종 황제 그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우정을 상상하여 표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