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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나만의 돋보기/이벤트용 서평

<서평>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책 표지

 

*히틀러와 나치라는 존재는 말이 필요 없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세상 그 누구와 비교하는 것보다 이들과 비교하는 것이 비교당하는 쪽이 화를 낼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집단과 그 수장이라는 것. 이건 전 인류가 유전자 단위까지 그 의식이 스며들어 공유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물론 극소수나마 객관적으로 그 시대의 인물을 보려는 노력이 있지만 말 그대로 극소수이며 여전히 대다수는 이들을 증오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며 최소 앞으로 100년간은 이 입장이 변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확실한 건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고 이로 인해 생긴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다. 히틀러 이전의 지구와 이후의 지구 상황은 그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전 인류의 90%는 넘을 것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 “나치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개인별로 그 이유가 다 다르겠지만 결국엔 유대인 학살로 욕을 먹고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런 이유가 ‘영원히 저주받을 이유’의 가장 큰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아쉽긴 하다. 누구에겐 독일에게 더 큰 피해를 입어서 싫을 수가 있겠고 누구에겐 진영논리로 ‘나치가 극우의 대명사라서 좌파에 반대되는 사람들을 나치로 몰아가면 너무나도 ’프레임‘을 짜기 쉬워지기에 혹은 반좌파 계열 인물들이 툭하면 나치로 타락하진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에’ 나치를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이 성소수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쓸모없는 밥벌레라고 생각하여 학살했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직접적으로 없애려 했기 때문에 등 별에별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성(?)이겠다.

일단 이 책을 쓴 줄리아 보이드가 직접 말한 것처럼 ‘이 책 한권으로 히틀러 시대를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되고 객관적으로 그 시대는 이러했다고 판단하지는 말라’는 경고문은 오히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저자의 위트 있는 부탁이라 볼 수 있다. 그저 당시 세상을 살고 있던 평범한 시민들부터 저명한 유명인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기업가와 예술인들이 나치 독일이라는 나라를 탐험하고 느낀 감정을 기록한 기록물들을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년부터 나치독일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 보여주는 식으로 서술되는데 제목과 달리 직접적으로 히틀러와 나치당이 제대로 등장하는 시기는 최소 초중반은 지나야 알 수 있다.

 

 

항상 느끼지만 지금과 전혀 달랐던 유럽지도다.


즉, 단순히 히틀러가 집권한 시기뿐 아니라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전간기 독일의 상황을 알려주는 책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책 제목이나 평범한 분위기에 휩쓸리며 책을 읽으면 마치 히틀러 시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것을 조롱하는 책으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전쟁이 직접 일어나는 1939년 직전까진 웬만한 모든 나라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을 나쁘게 보지 않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계급과 인종에 상관없이, 독일에 대한 감정이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 감정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역사와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진부한 내용일 수 있겠으나 상당수 당시 사람들이 히틀러에게 느낀 감정은 ‘예전에 몰락한 강대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용감한 지도자’였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직접 1차 대전 때 최전선에서 독일과 싸웠던 백전노장들도 나치당에 그렇게 큰 악감정이 없었고 오히려 동정심이 있었던 점에서 어떤 분들은 놀랍거나 당황할 수 있을 텐데, 이 또한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지 오래인 현대 사회에 살고 있고 결과론적인 담론에 너무 빠져 있지 않았나 하는 고민 때문이겠다.

일단 나치당의 무시무시한 악행들 중 상당수는 어렴풋이 다른 연합국들도 저지르고 있었단 것은 이미 역덕후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일반인들에게 상식이 된지 오래다. 유독 나치 독일이 광범위하게, 잔혹하고 빠른 속도로 사회부적응자나 소수자들을 ‘학살’한 것이 문제였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들도 당시에선 동성애자들을 감옥에 가둬 굶겨 죽이거나 폭행해서 죽이는 것을 당연시 했고 장애인을 대놓고 죽이진 않더라도 두 번 다시 그들이 아이를 가지지 못하도록 불임수술을 암암리에 강제로 시행하도록 밀어붙인 점은 역사의 뒷이야기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게다가 홀로코스트와 포로학살에 가려져서 그렇지, 전쟁이 일어나기 전 독일의 강제노동 수용소들은 오히려 영국과 미국의 정치인이나 고위층 관료들과 그 가족들이 필수로 거치는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는 점이 더욱 아이러니하다. 당시 모든 나라 사람들은 ‘굳이 유대인, 집시가 아니더라도 반사회분자들을 국가의 힘으로 어디론가 가둬서 혼내주고 싶어 했던’ 욕망이 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옛날이라 사람들이 더 폭력적이고 미개하다’라고 매도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수많은 당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히틀러가 지배했던 독일에 열광하던 부분은 “나치 독일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던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방파제다.”, “독일인들도 미래가 좋을 거라고 확신은 못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희망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한 용기를 간직한 채 든든하게 삶을 살 수 있는 나라가 나치 독일이다”라고 진심으로 좋아했던 점이 가장 소름끼친다.

어째서 나치 독일 말고 다른 나라들은 왜 집권층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것일까? 책에서도 지적한다. 상당수 유명 인사들이 보고 감명 깊어했던 독일의 장점들은 한참 전부터 나치당이 교묘하게 꾸며낸 연출이며 장식이자 가짜였으며 실체가 드러나자 몇몇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며 나치에 대항하기도 했단 점. 그러나 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그 비율은 너무나도 적은 게 문제였다. 또 반유대주의는 어느 나라나 있었던 떡밥이었다.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서 가려졌지 2차 대전 직전까진 오히려 폴란드나 프랑스도 독일보다 더 심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나라였다. 이미 10년 전부터 나는 ‘죽임당한 유대인들 상당수는 자신들이 유대인인줄도 몰랐고 독일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일해서 부를 가져다 준 애국 시민들도 많았지만 그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모조리 잡혀 들어갔다’라는 자료들도 많이 봤다. 그럼에도 반유대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쉬고 대상만 바뀌었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또한 나치당의 악행이 가장 잘 알려져서 그렇지, 공산국가들의 악행과 공산주의 그 자체의 모순점과 문제점이 낳은 학살과 정책과 분위기로 인한 압살과 파괴행적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전 세계를 다 휘어잡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감에 사무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나치 독일이 “빨갱이를 잘 때려잡는 나라”라는 이쁨을 받았을까? 반대로 ‘공산주의는 당연히 성스러운데 당시 사람들이 미개해서 무조건 때려잡으려고 했다. 이 모든 건 자본주의가 사악했으므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숱하게 봐서 지겹다. 확실한 건 당시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희망을 느꼈단 점에서 우린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봐야겠다.

예를 들어 노벨문학상을 받은 크누트 함순이 자신의 메달을 악마의 입이라 불린 요제프 괴벨스에게 선물하고 나치 독일을 열렬히 찬양하는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영논리 혹은 언더도그마적 감성으로 ‘이는 크누트 함순의 나라인 노르웨이가 영국에 능멸당하고 괴롭힘 당한 부분이 있어 상대적으로 자신을 이용하려는 독일을 이용하며 당시 사람답게 그냥 산 것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나는 판단을 보류하겠다. 마치 20세기 초에 다시 탄생한 신생 폴란드를 침공했던 레닌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폴란드를 멸망시키려 했던 레닌은 섬뜩하지만 그래도 한국 독립군들에게 무기를 지원해서 우린 그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라는 논리를 펼치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의견에는 반대한다. 일단 책의 내용과 별 상관이 없으니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물론 책에서도 가면 갈수록 나치 독일이 본색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며 겁에 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설마 히틀러가 거기까지 가겠어?’라고 위안 삼으며 동경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려는 것도 슬퍼보였다. 심지어 미국 최초의 박사 학위를 딴 흑인 출신의 듀보이스 박사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찬양하며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로 떵떵거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피력한바 있었다. 게다가 그는 마찬가지로 흑백갈등이 미국보단 독일에서 더 적다라는 개인의견을 말했었다. 듀보이스 박사만 나쁜 놈이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유명한 학자들도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자기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일부 진영에서 의심하고 있는 떡밥인 ‘왜 어째서 나치당을 빌미로 우파는 좌파보다 더 사악하다고 매도당해야하냐? 나치가 극우냐? 대체 공산당과 다를바 없는 나치당이 왜 극우인거냐’라고 의심을 표하는 떡밥이 당시에도 있었고 스위스 출신의 지식인 드 루즈몽이 유명한 예시다. 루즈몽 뿐 아니라 이미 당대에도 이런 비꼼은 많았다. 허나 이미 전 세계적으로 “나치=극우=우파는 타락하면 나치가 된다. 공산당을 찬양하는 극좌보다 극우가 더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에 이 또한 무의미한 고민이려나?

어쨌든 책이 다 끝나면 독일은 폐허가 됐고 히틀러는 지옥에 떨어졌으며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당시 나치 독일을 좋게 평가했던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고개를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도 있고 조용히 입을 다물다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베팅’ 잘못 해서 끝장난 부분에선 애도를 표한다. 당시 시대를 직접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체제가 낫냐는 선택에 대해선 그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나 그로 인한 피해는 역사의 패배자들이 지고가야 할 당연한 의무겠다. 일단 나 자신이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고.

물론 과거엔 ‘정치적 올바름’에 심취했었던 나였지만 요즘엔 이런 나조차 ‘그 시대엔 땅을 넓히고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라도 자신의 나라가 더 크고 강해지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나치당이 필요 이상으로 악행을 저지른 것도 문제지만 전쟁에서 그들이 승리했다면 몇몇 논리는 정 반대가 됐을 것이다. 물론 전쟁에서 지고 있는 와중에도 유대인은 꾸준히 학살하려는 뻘짓을 저질렀기에 당연히 졌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마음을 바꾸었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나와 우리 그리고 전 인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생활 방식, 문화는 시대가 변하면 절대로 언급되어선 안 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과연 시대가 지나서 사라질 입장은 무엇일까?

 

 

전 세계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나, 함부로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 복잡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개인적으론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그에 기반으로 심어진 이상한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적 대혼란에 대한 평가가 21세기 말이나 22세기, 23세기 그리고 그 이후의 인류 역사에선 그 존재들이 끝까지 좋은 모습으로 남을지, 아니면 중간에 엎어져서 바보 같은 뻘 짓으로 기억될 지는 여전히 두고봐야할 것이지만. 어쨌건,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이다. 반론은 대환영이다. 아니, 오히려 납득할 정도로 전혀 다른 입장을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 같다. 지금은 말을 조심해야하는 시대고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괴로운 시대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