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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나만의 돋보기/개인용 서평

<서평>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2부)

이 서평은 지난 2014년 8월 18일,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 글을 썼을 때의 제 관점과 현재의 제 관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단부엔 2020년 10월 31일 기준으로 저의 달라진 마음을 남겨놓았습니다. 물론 둘 다 저의 관점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책 그 자체와 그것을 읽고 난 예전의 제 마음과 현재의 제 마음을 비교하면서 이곳을 지나가시는 분들께서 조금이라도 영감을 얻어가셨으면 합니다.

 

 

책 표지의 영문판 모습 (누르면 책 설명 페이지 이동)




이 책을 한창 읽고 있을 시기에 이라크에선 미치광이 참칭집단 IS에 의해 야지디 교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있고 이라크의 모든 문화재와 과학서적들이 불타고 있었다. 참으로 빌어먹을 정도로 분노가 솟구치는 심정이었다. 혹자들은 그냥 14억 무슬림들이 글러먹은 거라고 말한다. 무슬림은 중남미인들과 아프리카 흑인들과 똑같이 구제불능이고 열등하다고까지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러한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처럼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조금이라도 안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던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계속 이야기 하자면, 이슬람주의의 교활함과 치밀함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4. 전통적인 국가 vs 국가의 방법으론 이슬람주의를 막을 수 없다.


*일단 지난 글의 3번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주의자들은 전통적 지하드와 도덕성에 불과한 샤리아를 이상하게 짜집기하여 옛날(사도 무함마드가 살았다고 알려진 시대...)이 좋았다는 식으로 '상상 속의 공동체'를 꿈꾸며 만들어진 전통을 가지고 세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크게 제도권 주의자들은 끊임없는 민주화 요구와 민주주의 제도의 투표를 통해서 이를 실현하려 하고 지하디스트들은 폭력적인 방법(자살폭탄테러)으로 이를 실현하려 한다.

보통 단순히 테러리스트들을 불만에 가득차서 너죽고 나죽자! 하는 식으로 테러한다고 생각하거나 '나는 이 나라를 독립시킬꺼야!'라는 생각으로 테러를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말씀! 테러는 그저 수단일 뿐이고 테러를 하는 이유도 단순한 범죄가 아닌 이슬람주의자들의 최종목표를 위한 발걸음이라 봐야한다.


 "폭력배는 그런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물질적인 소득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가치관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P.238) 


자살폭탄테러나 공포심을 조장하는 무장세력들의 난동은 이슬람식 지구질서(니잠 이슬라미)를 이루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테러와의 전쟁'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미국 정부와 조지 부시 2세 대통령은 엄청난 실수를 한 셈이다.

티비 교수는 파시즘-나치즘, 공산주의와 달리 이슬람주의는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이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반미주의, 반이스라엘 정서(반유대주의가 아니다!)를 담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신앙인과 그들의 적과의 전투는 본질상 종교적 교리를 둘러싼 싸움일 뿐이다. ...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갈등이라기보다는 이념의 전쟁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결국에는 진정한 신앙이든 불신앙이든 어느 한쪽이 득세하게 될 것이다."  (P.238) 


아무리 정교하게 미군이 무기를 개발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하디스트들을 섬멸해도 전혀 소용없다. 아이언맨이 현실에 튀어나온다해도 토니 스타크 사장이 파산하거나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끊임없이, 집요하게 이슬람주의자들은 현 지구의 베스트팔렌 시스템을 무너뜨리려고 별에별 짓을 다 떨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국력을 더욱 떨어뜨리고 러시아나 중국과 닽은 준패권국가들의 힘만 강화시켜 줄 뿐이다. 다시 말했듯이 '테러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이슬람주의자들은 국가를 넘어서 비정규전을 얼마든지 감행할 수 있는 조력자들과 여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슬람주의 자체가 비국가적 행동으로 나서기  때문에 국가적인 행동으론 이들을 절대 못 막는다!
 
테러와 여러가지 사회적 소동을 통하여 한 국가의 피로도를 지속적으로 누적시키고 이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을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꼬드겨서 이슬람주의의 품으로 끌어안는다. 불행이도 이러한 방법이 유럽에선 조금씩 통하고 있다. 반대로 진보적 이슬람이나 민간 이슬람에 대한 탄압을 가속화(이럴 땐 유럽의 극우파와 손을 잡기도 한다!)시키고 유럽의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적 불관용을 이용해서 외톨이가 된 일반 무슬림들을 이슬람주의자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티비 교수도 40년 넘게 독일에서 열심히 강연하고 학문적 업적에 이바지 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 했어도 다른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외면당했다는 개인적 푸념도 들을 수 있었는데 진지한 관심이 필요할 때다.




5. 좌파,진보나 우파,보수나 이슬람주의에 대한 대처법이나 이해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한심한 반응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이슬람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 말 그대로... 위에 말했듯이 우파 계열 인사들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구분하지 말라고 한다. 14억 무슬림들은 모두 한 통속이며 글러먹었다고... 아무런 합의도 찾을 수 없는 열등하고 추잡한 존재들이라는 결론을 함부로 내린다. 심지어 이슬람교 자체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중세의 헬레니즘을 부흥시키고 합리주의로 비잔티움과 함께 중세 서양문화를 이끈 기억은 어디로 팔아먹고 말이다. 애초에 문제 해결 방법을 집어던지고 폭언을 시작한다.
혹은 적대적 동반관계로 성장해서 자국 내의 성 소수자나 반대파들을 압제하기 위해 이슬람주의자들(물론 얼마든지 이슬람교 그 자체를 저주함으로서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과 손을 잡는게 대부분이다.

반대로 좌파 계열 인사들은 그놈의 반미주의와 반이스라엘 정서 때문에 이슬람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지 못 한다. 오히려 제도권 주의자들이 온건파라고 착각하면서 적극적으로 그들을 돕거나 협력하는 일이 다반수라고;; 때문에 이슬람주의에 대해 말이 나오면 십중팔구 미국 XX끼! 이스라엘 XX끼!로 결론이 나거나 터무니 없게 중동,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정권에 복지를 해야한다는 말로도 나온다. 즉,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슬람주의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경제가 발달하면 이슬람주의를 자동으로 버릴 거라는 너무나도 허황되고 희망이 가득한 말만 한다.

또 이스라엘의 모든 유대인들이 다시 비행기나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을 떠나야지만 이슬람주의가 몰락할거라는 말도 나온다.



문제는 인터넷이나 현실이나 이 두 부류 말고 다른 방법론을 꺼내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을 동안에도 벌어지는 끔찍한 이슬람 관련 사건들을 보면서 그 것에 대한 반응이 어찌나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반응만 튀어나올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우파들이나 좌파들이나 자신들은 무슬림들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데 한쪽은 이슬람주의자들과 적대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만들거나, 다른 한쪽은 협력을 한답시고 집안에 도둑과 늑대들을 들여오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두 부류 모두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소리없이 농락을 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2번과 3번에서 언급된 '포위된 이슬람' 이미지를 꺼내면서 자신들을 약체화 한다. 사실 20세기 중반의 이슬람주의자들은 반이스라엘 정서에 대해선 협력을 하기도 했던 아랍 세속민족주의 정권과 같은 배를 타며 활동하기도 했지만 세속정권들의 탄압을 피해 유럽으로 피신한 인사들이 많았다.

문제는 유럽에선 온갖 다원주의에 따른 인권과 제도적 보호를 받으며 문명의 이기를 맛보는 자들이 정작 유럽에선 무슬림들이 모인 마스지드(성원)에서 몰래몰래 이슬람주의를 설파하거나 자국으로 돌아가선 그러한 서구권의 문명발전에 의한 결과로 이득을 봤으면서도 자국은 이슬람주의 국가로 변화시켜 베스트팔렌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한 기지로 만드려 하는 점이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선 자신들을 약자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즉, 이슬람주의의 전체주의성을 비판하면 비판하는 자들을 '극우주의자'들이나 '유대인의 졸개들', '미국의 앞잡이'라고 역공을 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세력강화를 위해 진보적 이슬람이나 민간 이슬람교를 몰래 탄압하기도 하는데 이 사례는 알면 알 수록 기가 막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이 한 창일 때, 보통 사람들이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이 보스니아 무슬림들을 학살했다고 믿고 있지만 이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보스니아의 이슬람교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와하비즘으로 무장된 이슬람주의자들이 무기를 들고 보스니아로 진격했는데..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은 물론이고 '유럽 무슬림(보스니아인들 말이다!)'들 마저 공격한 점이다!

더구나 정치적 헤게모니를 이슬람주의자들이 보스니아를 지배한 후엔.. 원래 유럽 무슬림은 종교적으로 어느 정도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여성들의 인권도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비하면 그리 심하진 않았었다. 그러나 내전이 종식된 후 이슬람주의자들이 개입된

이후엔 여성들은 히잡을 써야 했고 더욱 엄격해진 가짜 샤리아법이 판치는 그러한 사회가 되버렸다.
반면 유럽 무슬림들은 산 속으로 쫒겨나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문제는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보스니아의 이슬람이 부흥을 맞았다고 좋다고 찬양한 것;;


이러한 방법으로 세를 불리는 것이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티비 교수도 그렇고..

내 생각의 경우, 이슬람주의는 21세기의 나치즘 혹은 공산주의처럼 하나의 거대세력이 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하고 있다. 이 책에선 그 유명한 한나 아렌트가 수 차례 언급되는데 이게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란 것을 증명한 셈이다.




6. 대안은 민간 이슬람과 진보적 이슬람을 돕는 것!?


* 특히 이 방안은 우파보단 좌파들에게 부탁하는 걸 수도 있겠다. 어리석게도 좌파 뿐만 아니라 명망있는 웬만한 지식인들이 착각을 하는 것이, 진보적 이슬람이나 민간 이슬람은 전혀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이들을 외면하고 멸시한다. [이슬람주의자들도 진보적-민간 이슬람을 따르는 무슬림들을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훌룰 무스타우라다)을 따르는 불신자(타크피르)'라고 부르며 잔인한 탄압을 가한다!] 제도권 주의자들이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최대한 빨리 이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제도권 주의자들을 민중민주주의라고 오해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동양주의(오리엔탈리즘, 알 이스티슈라크)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그리스도교에도 가톨릭, 정교회, 콥트교회, 사라진 경교회(네스토리우스교), 개신교 중에서도 장로회, 감리회, 침례교 등 여러 교파들이 있듯이 이슬람교에도 수니파(순나)와 시아파(쉬아)말고도 수피즘, 12이맘파, 알라위파 등 수십개의 종파들이 있다. 무슬림은 다 똑같다는 말은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도들은 모두 똑같다는 말로도 통한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물론 완벽한 사회는 없다. 민간 이슬람과 진보적 이슬람도 제도권 주의자들보단 나아도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을 피해 차악을 골라야 하고 차악보다는 사태 완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한 셈이다. 이를 위해선 헬레니즘을 발견, 합리주의를 발전시켜 중세 최고의 문화 중 한 부분을 이룬 이븐 시나와 이븐 루쉬드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불행이도 13세기 이후 이들의 힘은 약화되어 사라지고 말았다)을 발굴해서 민간 이슬람과 접목시켜 새로운 사상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위해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또한 모로코 같은 나라들은 반유대주의와 타종교에 대한 무슬림의 공격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한다. 이슬람권 국가라고 '터키빼곤 모두 꼴통'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할 줄도 알아야한다. 인도네시아의 민간 이슬람 성향의 무슬림들이나 다수의 테러에 시달리는 중동 무슬림들은 끊임없이 와하비즘과 살라피즘 그리고 이슬람주의의 세뇌공작에 노출 되어있다. 전지구적인 관심이 필요할 때다.

문제는.. 바삼 티비가 이 책을 생애 마지막 저서로 썼던 2011년, 2012년과 다르게 2014년 까지 달려와서 보면 제도권 이슬람주의자들의 힘이 매우 강해졌고 터키에선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웃어서도 안되는 말도 안되는 법률을 시행하느라고 논란 중에 있다. 모로코, 인도네시아, 요르단과 함께 그나마 세속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인 터키에서조차 이런 AKP와 국민들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앞날이 깜깜하기만 하다.

더구나 프랑스를 기준으로 이젠 성소수자를 비롯한 인권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이들은 네오 나치들보단 이슬람주의자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이러한 이슬람주의자들이 위험하다고 알리는 부류는 현재로서는 불행하게도, 답이 정말로 없는 마린 르펜이 몸담고 있는 인민전선과 같은 극우파들이란 점이다. 여전히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슬람주의 문제는 종북주의 문제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1) 장기적으로 볼 때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지만 사회에서 끊임없이 기생하며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고
오히려 이슬람주의는 유럽인들을 개종시키는 위업까지 달성하고 있다.

2) 종북이나 이슬람주의나 민주주의의 상징인 다원성을 부정하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드려는 점도 같다.

3) 이것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행동이 너무 안 일하거나 별일 없을 거라고 무대응에 가까운 관점을 가진 점도 같다.

4) 이슬람주의와 종북을 비판하면 툭하면 유대인과 미국(종북의 경우 일본)의 앞잡이로 역공을 당하는 점도 같다!

5) 지식인들이 자꾸 제도권 이슬람주의자/북한정부와 대화하려고 하지 민간-진보적 이슬람/북한이탈주민, 억압받는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북한주민들은 외면해버리며, 전자[이 경우 이슬람주의자들의 행동을 민중민주주의라고 오해해서 비롯되는 경우인데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동양주의, 알 이스티슈라크)의 함정]와 협상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착각하는 점도 같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생각을 안겨준 티비 교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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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선 현재(2020년 10월 기준)의 본인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고 언급했다.

 

그 이유는 책 자체가 틀렸다기보단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바삼 티비같은 변호자에 가까운 학자의 주장보다는 더욱 급진적이고 방어적이며 절박하게 활동하고 계신 '하미드 압둘 사마드(Hamed Abdul Samad)' 박사의 저서인 '무함마드 평전(링크)'과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이슬람의 상자'라는 이슬람 비판 채널의 인기가 더 높아졌고 이는 온건한 포용론보단 2014년 발흥하다 멸망한 테러국가 '다에쉬 IS' 준동과 함께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보여준 말도 안되는 추태를 지켜보면서 기존의 주류언론들은 철저하게 도를 넘어선 자들의 행동을 받아들여주면서도 반대에 속한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등의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면서... 바삼 티비의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고 사마드 박사조차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마드 박사의 운영 채널에 관한 '리버티 아카데미' 사이트의 주소 (링크)

 

개인적으론 학교와 언론 그리고 미디어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당연하게 내세우는 것을 보며 마치 이것을 안전수칙을 지켜야하는 것 처럼 받아들이고 행동하면 전 세계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포용하려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답이 없어 예외사례를 만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대해 기존의 현대사회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무능을 보여줬음에도 기존의 관점을 계속 이어가야한다는 부담감과 중압감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덨다. 이에 대한 아쉬움과 조금씩 개인이 가진 세계관이 수정되는 과정은 다른 책들과 함께 다룰 것인데 이번엔 우선 이 이슬람주의에 관한 글부터 재정리하고 차근차근 개인의견을 피력해보겠다.

 

여전히 나는 바삼 티비 교수의 가치관을 폄하할 생각이 없고 사마드 박사의 노력도 소중하다 생각하다. 둘은 결코 친해질 수 없을 것이지만, 나에겐 두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안타까움을 발견했다. 비유를 하자면 천만대군의 적들이 몰려올 때 아군은 극소수에 구식 화승총과 구식 대포에 총알과 포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열심히 전투에 참여하는 죽음을 각오하는 병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가 볼 땐 상황이 그렇게 보였다.

 

(옛 이글루스 이웃 TERESA님의 글 1)

(옛 이글루스 이웃 TERESA님의 글 2)

 

한 때 이글루스의 지인이셨던 분이 쓰신 2014년의 글과 그 아래의 덧글도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서로 가진 생각과 바램이 다르고 적대하며 비난하는 글들이 보여도 그 안에는 모두 곱씹어야 할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