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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나만의 돋보기/개인용 서평

<서평>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이 서평은 지난 2014년 5월 17일,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 글을 썼을 때의 제 관점과 현재의 제 관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단부엔 2020년 10월 29일 기준으로 저의 달라진 마음을 남겨놓았습니다. 물론 둘 다 저의 관점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책 그 자체와 그것을 읽고 난 예전의 제 마음과 현재의 제 마음을 비교하면서 이곳을 지나가시는 분들께서 조금이라도 영감을 얻어가셨으면 합니다.


책 표지 및 설명 페이지 (YES24)

 

 

이 책은 양은 방대하지만 굉장히 빠르고 재밌게 읽었던 책입니다.

전 인류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면서 미래가 밝아보이는 체제로 흘러가고 또 어떤 나라는 처참하게 몰락하며 빈곤과 부정의 악순환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입니다.

이 책은 또한 한 때, 제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빈곤의 종말'의 저자 <제프리 삭스>와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를 동시에 비판하는 서적이기도 합니다.

제프리 삭스는 그의 책에서 어려움에 처한 나라들이 환경적인 이유로 확실히 힘들어하고 있고 부유한 나라에서 적절한 지원을 통하면 2030년 안에 전 세계에서 절대적인 빈곤(정말 식량이 없어 굶어죽거나 약품이 없어 병사하는)이 사라질 것이라 주장하신 분이고...

그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각 대륙의 지리적 차이와 폐쇄성 때문에 서양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고 오늘날과 같은 세계가 완성된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 두 사람의 이론은 그럴 싸 하지만.. 오늘 소개한 이 책의 저자인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은 이것을 문화적, 인종적 이유와 더불어 근거가 타당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두 저자분이 주장하시는 국가 실패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포용적/착취적 정치 제도' '포용적/착취적 경제 제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결과!



현재 실패를 맛보고 있는 국가들은 착취적 정치제도로인한 착취적 경제제도까지 생겨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고 반대로 선진국들은 어떻게든 포용적 제도를 얻게되고 그것이 선순환으로 이어져 부유해졌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죠.


지리/문화적 차이를 비판하는 근거로는 남북한의 차이, 미국 애리조나 주의 노갈레스 시와 멕시코 소노라 주의 노갈레스시의 차이, 동독과 서독의 차이 등으로 같은 지리와 문화, 위도를 지닌 곳에서 왜 어찌하여 다른 한쪽은 자유롭고 부유한데 다른 한쪽은 절망적인 상황에 노이느냐는 것이죠.

첫 시작인 두 노갈레스 시의 비교를 시작으로 미국의 영국 식민지 시절과 멕시코의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로 올라가 이 두 세계는 시작부터 조금씩 다른 차이를 지녔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앞서... 이 책에선 절대적으로 포용적 정치 제도가 싹이 터야지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시행착오와 운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뭔가 새로운 시대로 직행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닌 '역사적 우발성'과 그 우발적인 사건으로 선택의 여지에 놓이게 된 국가의 지배세력이 결정하는 시점인 '결정적 분기점'으로 포용적 정치 제도가 탄생하거나 개선되고...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센티브'가 들어가면서 선순환이 시작되어 '포용적 경제 제도'가 성장하면서 부유해진다는 패턴입니다.


다만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가 들어서려면 기존의 체제가 바뀌어야 하며 이로 인한 '창조적 파괴'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력들이 창조적 파괴, 혁신을 멀리하게 되면 포용적 제도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그 나라는 쇠퇴하게 된다는 것이죠.


역사적 우발성은 흑사병이나 아메리카 대륙 연결이 있습니다. 결정적 분기점으로는 영국과 에스파냐, 프랑스의 국가경영 차이인데.. 영국은 하필 정착한 곳에 금도 부족하고 강력한 제국국가가 없었던 부근이었기에 적당히 가난하게 식민지인이 살며 땅을 꾸려야 했던 반면 에스파냐는 거대 제국을 무너뜨리고 막대한 황금을 독차지한 노다지를 얻었고 그 부를 왕실이 독점하게 되는 행동을 함으로서 두 나라의 정치적 행보(영국은 식민지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 에스파냐는 식민지인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제대로 주지 않음)도 처음엔 미약할지 몰라도 결국 나중에 가면 갈수록 엄청난 차이를 초래한 다는 것이죠.


착취적 제도를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에서도 설명한, 아프리카의 초대 국부들이 왜 어찌해서 효율적인 성장모델을 제시하지 않고 국가 구성원을 위한 정책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행동으로 자신들의 절대 권력이 크게 약화될 것을 깨닫고 일부러 국민들이 빈곤해지고 괴로워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북한도 빠질 수가 없죠. 


창조적 파괴를 원하지 않는 구 체제의 일원들은 국가가 가난해지고 시민들이 절망에 빠져도 그것을 개선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심하게 사태를 악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간단합니다. 포용적 제조가 생겨나면 구 체제의 기득권이 소멸하거나 크게 훼손되기 때문이죠. 이것을 점진적인 노력으로 소멸시킨 사례가 있고 철저한 뿌리뽑기나 저항으로 물리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자가 영국, 후자가 프랑스. 나머지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구 체제를 소멸시켜도 새롭게 등장한 세력들이 기존과 똑같이 어떠면 더 심한 착취적 제도를 들고 나타나 국가를 옥죄는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선 착취적 정치 제도로도 일시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결국엔 멈추고 처절하게 몰락하는 과정도 보여지고, 포용적 제도로 발전한 나라도 얼마든지 착취적 제도로 쇠퇴할 수 있다는 사례도 제시합니다.


전자로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찬양하던 대제국들이 포함되며... 그것들을 가리지 않고 깝니다. 고대 로마제국과 중남미의 마야 도시 국가들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그리고 구 소련도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령, 철도를 놓으려 해도 오스트리아나 러시아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하여 최소한의 철길만 운영하거나 아예 철도 계획 자체를 취소시키는 것이죠.

후자로는 중세의 해양강국 베네치아인데.. 초기엔 포용적 제도로 웅비하다가 스스로 폐쇄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처절하게 몰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포용적 제도로 발달한 나라들도 얼마든지 착취적 제도로 변질되어 몰락할 수 있다는 증거겠죠.


포용적 정치 제도를 위한 초석은 적당한 중앙집권화와 착취적 제도로 흐르는 걸 방지하는 정치적 유연성과 견제활동입니다. 아프리카에는 불행이도 중앙집권화를 이룩한 곳이 거의 없었기에 분열된 채로 혼란이 가중되다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제도가 도입되면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든 것이라고 설명하죠.


이 책을 통해 전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라는 나라에 대한 관점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옛 부터 구 체제 + 식민지 제도 + 독립 이후의 정치인들의 욕심 때문에 절망의 땅이 된 여러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보츠와나는 식민지 시절 때도 슬기롭게 식민지배용 착취 제도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독립 후에도 각 부족끼리 싸우지 않고 포용적인 정치제도를 통해 안정적인 평화를 이룩하며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 자원으로 인한 부를 특정 정치세력이나 부족이 아닌 국고로 환수시켜 발전을 위한 자금으로 쓰이면서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로 발돋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이는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에도 설명됩니다.


또한 이 책에선 중국의 부활을 적으면서도 여전히 중국은 착취적 정치 제도로 일시적인 발전이 가능한 체제일 뿐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창조적 파괴가 현 중국에도 필요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걱정이죠.

무엇보다 번영을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뚝딱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링의 대상으로 봐선 안된다는 시각을 보여주고... 현재 실패하고 있는 나라들이 궁극적으론 포용적 제도(구성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구 체제로 돌아가는 걸 방지하는 정치적 견제 및 유연성 구축)를 이룩해야지만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이고 이를 위해선 운이 좋은 우발성이 다가와야 한다는... 조금은 슬픈 미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저서로 제 세계관과 가치관에 좀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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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후반 현재에도 제 관점은 당시 서평을 쓸 때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단지 세부적으로 세계를 보는 시선과 하나의 거대한 담론에 대한 회의가 조금 강해진 것 말고는요.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 '편견이 심하다, 저자가 멋대로 자료를 취합해서 엉뚱한 얘기를 한다'며 비판하는 글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론 비판을 하신 분들을 존중하며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것도 또한 공부니까요. 그래도 제게는 '환경이 이래서 우린 아무것도 못해, 저들은 너무 유리한데 우린 항상 불리하네'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 보단 '우리도 저들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어. 필요하다면 창조적인 파괴도 필요하겠어'라고 용기를 내는 것이 더 큰 미래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이러한 서평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셨다면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주시면 저야 정말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