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 나만의 돋보기/이벤트용 서평

<서평> 미국인 이야기 1~3권 (로버트 미들코프 저)

(책 표지)

 

*한국과 가장 외교적으로, 문화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에서도 가장 가깝고 친근한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안에서 미국의 역사를 다룬 책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었다. 정확히는 미국을 다룬 책은 많아도 균형 잡히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미국 역사를 다룬 책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 미들코프가 쓴 ‘미국인 이야기(정확히는 시리즈 중 1~3권을 미들코프가 썼다)’는 미국 역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책이다.

원래 이 책 제목은 ‘The Glorious Cause’로 “옥스퍼드 미국사”라고 불리던 시리즈였다.  ‘위대한 대의’ 혹은 ‘위대함의 이유’로 번역될 수 있는 제목으로 볼 수 있듯이 이 책이 의미하는 바는 현대국가의 모범을 완성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바치는 찬가라고 볼 수 있다. 2017년에 국내에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로 출간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미국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된 것은 혹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의식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이 책의 제목인 The Glorious Cause = 위대한 대의 파트가 1권부터 3권까지의 내용이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정확히는 로버트 미들코프가 쓴 책은 딱 1~3권이며 그 후론, 고든 우드가 쓴 ‘자유의 제국(Empire of Liberty)’은 4권 ~ 6권 파트, 대니얼 워커 하우가 쓴 '신의 의지(What Hath God Wrought)'는 7권 ~ 9권 파트, 제임스 맥퍼슨이 쓴 ‘자유의 함성(Battle Cry of Freedom)’은 10권 ~ 12권까지의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 이후로도 미국인 이야기 = 옥스퍼드 미국사는 현대 미국까지 다룬다고 쓰여 있기에 앞으로도 최소 18권이나 그 이상으로 시리즈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미국인 이야기 1권부터 3권까지의 내용은 딱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되기까지의 과정만을 다룬 파트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역사를 다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아쉽지만 당시 미국 독립전쟁의 여러 관점과 간단명료한 내용으로 인해 읽기도 참으로 재밌는 해설집이다.

 


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역사가 매우 짧다는 이유로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들의 삶을 가볍게 여기거나 모른 척하는 태도로 일관할지 모르겠으나 글을 쓰고 있는 2022년대에 이르러 내 생각은 바뀌었다. ‘오랜 세월 한 곳에 정착하여 거주한 민족국가의 역사’가 아닌 ‘근현대 자유민주주의적 세계질서를 살아가는 시민국가’로 보면 미국은 역으로 ‘가장 오래된 현대국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4천~5천년에 이르는 국가라 할지언정 현대국가로서의 한국사는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봐야하고(대한제국의 개혁과 이후 일본제국에 대항한 독립운동은 원활한 국가운영이라 볼 수 없었기에) 일본은 자발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친 주권국가로서의 역사로 따지면 1800년대 중반으로 잡아야 할 것이고 프랑스가 미국 다음으로 오래된 현대국가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느낀다. 영국의 경우 미국보다 오래될 수도 있으나 입헌군주제와 신분제가 공존하고 있는 사회이고 미국의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라면 몰라도 미국에 의한 현대 세계화 시대로 보자면 거리가 먼 느낌도 있어서 애매하게 생각한다.

이런 설명을 한 이유는 가장 오래된 현대국가로서의 미국으로 관점을 바꾸면 미국의 역사는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과목이자 현대와 미래에 필요한 지혜를 찾아내는데 중요한 요소다. 미국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궁금한 점이나 현대 미국 사람들에 대해서 다른 나라 사람이면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미국사와 그 이전 서양의 근대철학과 경제체제, 사회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습득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 역시 많이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점이라면 이 책은 많은 사진 자료들과 당시 상황을 표시한 지도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어려움을 덜 수 있지만 그래도 미국의 주들과 주요 도시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해 따로 다른 책을 찾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미국 지도를 살펴봐야 했다. 유럽의 고대 역사를 읽을 땐 지역과 도시 이름이 바로 기억이 나서 따로 그것을 할 필요는 없으나 미국 부분은 꽤 어려워서 지형과 도시가 표시된 세계지도를 보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이해가 더 쉬워질 것이기에. 또 다른 단점으로 초반에 거론되는 영국 역사 속의 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누락된 인물들이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따로 검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왕과 최측근 그리고 그의 오른팔에 해당되는 인물은 사진과 함께 친절한 설명이 있으나 그 외의 유명인들은 따로 주석이나 추가 설명이 없어서 따로 찾아야하는 인명이 더러 있었다) 무턱대고 미국 역사부터 공부하는 것보단 최소 영국의 근세 상황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이 점이 약해서 더욱 책을 읽기 힘들었다. 주석이 없고 그저 참고 문헌을 언급하는 것도 아쉬움 중 하나다.

그래도 오기를 품고 꾸준히 읽어나가면 못 읽을 책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 역사를 제대로 알아간다는 흥분감에 차근차근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받아들이니 또 다른 서사시가 완성됐다. 앞서 말했다시피 미국인 이야기에서 1권 중반부까진 영국 역사나 다를 바 없다. 영국에서 온 시민들이 건설하고 영국 국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식민지의 역사로 시작했으니까 당연한 거다. 이 당연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전혀 다른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졌을까?

미국인들도 처음부터 독립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영국장군 브래독 밑에서 복무한 영국군인이었으며 패전도 여러 번 경험한 그렇게 뛰어나진 않은 군인이었고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이자 과학자, 사업가이면서도 뛰어난 정치력을 수반한, 한편으론 가짜뉴스를 만들어 라이벌들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린 밴저민 프랭클린조차 조용히 영국의 보호를 받는 한 관리인으로 남을 수 있었듯 식민지 사람들은 영국이라는 모국과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깨버린 건 다름 아닌 ‘세금’이었다. 흔히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라는 격언처럼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세금인데 이 세금이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부인 미국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물론 세금 외에도 여러 가지 자잘한 원인들도 같이 있었으나 가장 큰 원인이 세금이라는 건 변함없다. “대표자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는 법칙으로 시작된 미국의 독립투쟁은 사소한 잘못과 영국 정부 지도층들의 안일한 판단이 누적되어 일어난 세계사의 나비효과나 다름없다.

조지 워싱턴이 죽을 뻔 했던 바로 그 시기, 1700년대 초중반은 북아메리카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자웅을 겨루던 시기였는데 프랑스를 무찌른 영국은 늘어난 전쟁비용을 메꾸기 위해 전쟁이 끝났음에도 다수의 군인들을 대륙 곳곳에 배치했고 이를 빌미로 여러 가지 세금과 주둔 비용, 군인들을 위한 복지에 강압적으로 참여할 것을 암시하는 법을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이에 처음부터 아메리카 13개 식민지들이 격분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서서히 불안과 공포가 그들에게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서양 삼각무역(원료-노예-제품)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핸 여러 가지 우회기능(밀수, 관리들에게 주는 뇌물, 효율적인 무역루트 개척 등)을 막으려는 영국 정부의 뚝심 있는 세금 뜯기 전략과 그 법을 노골적인 목적으로 공표하려는 분위기 등이 식민지 사람들에게 와 닿았으며 하필 아메리카 식민지 사람들은 성공회인 영국과 달리 근면 성실한 청교도적인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지배하던 곳이어서 가톨릭과 척을 진 성공회조차 ‘가톨릭스러운 타락한 교회’로 취급할 정도로 강경한 개신교 성향이 강한 지역이어서 자유를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고 있었다. 이 중 상당수는 지금 들어보면 매우 황당한 소리가 많지만 당시엔 진지하게 접근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어떻게 보면 세계사를 바꾼 음모론의 긍정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식민지 의회(보통 사람들은 식민지하면 본국의 무소불위 권력으로 찍어누르는 형태로만 생각하는데 아메리카 13개 식민지 사람들은 일반적인 전근대국가의 신민이 아닌 의회가 있고 토론을 통해 정책을 발표, 수정하는 시민들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현대사의 행운이라 볼 수 있고 명예혁명을 통한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영국 역사의 특이성에서 나타난 결과다)에선 ‘세금을 철회하거나 조금 줄여주시고 혹은 수정해주세요’로 정중히 부탁했고 영국 내에서도 ‘너무 세금을 강하게 부과하면 아메리카 식민지가 쇠퇴할 수 있고 이는 곧 대영제국이 쇠퇴할 수 있다’면서 식민지 사람들을 옹호한 영국 정치인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초기엔 ‘인지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 정책들이 철회되어 위기를 모면하는 것 같았지만 ‘찰스 톤젠드’라는 정치인이 만든 법이 양국의 역사는 물론 세계의 역사를 완전히 바꿨다. (정작 톤젠드는 그 문제의 법을 만든 지 얼마 안가 급사했지만) 당시 모든 나라들이 다 그랬지만 지배자인 영국 관리들은 식민지 거주민들을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인 존재로 여기며 군인, 관리, 상인 할 것 없이 속임수와 갑질로 인한 폭거도 쌓이다보니 영국의 신하로 남고 싶었던 아메리카 식민지 거주민들은 최종적으론 전쟁을 통한 독립을 이루게 된다. 다 영국의 자업자득이다. 물론 당시를 살아갔던 영국인들도 미래가 완전히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로는 자발적으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식민지의 도시와 농촌 마을 사람들의 조화를 지키기 위한 단계적 저항이겠지만.

담백하게 양쪽 진영의 장단점을 나열 한 것도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봤다. 가령, 식민지 시절 영국 관리들과 군인들은 그게 설령 정의가 아닌 자신들의 안위와 국왕에 충성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인디언 거주지역에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무단 개척활동을 금지하고 그걸 처벌하려고 노력한 점이다. 그 외에 식민지 안에서의 소작농, 부농, 상인, 농장주, 지역의원, 밀수업자, 부랑자와 여성, 인디언과 흑인들에 이르기까지 각자 역할에서 최선을 다해 대영제국이라는 옛 체제에 맞서 싸우고 새로운 나라에서 열심히 살았는지도 보여준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인물 중심의 서술과 함께 기술되고 있어서 한층 더 입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는 것처럼 ‘식민지의 독립은 소수의 음모론자들의 계략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군인들만이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고 식민지 거주민들 각자가 나름 방법으로 저항을 한 것이었다. ‘자율이 강제를 이긴다’는 2권의 모토와 ‘각자의 최선이 아닌 모두의 차선’이라는 3권의 모토도 그 뜻을 한층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2권의 전쟁파트는 그 어떤 전쟁을 다룬 책들보다 긴장감이 느껴졌다. 조지 워싱턴조차 전쟁터에서 산화할 뻔했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당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솟아오르고 있던 영국의 정예 보병 레드코트들에게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리수였다. 한때는 식민지 저항세력들이 절망하고 주저앉았던 상황을 보며 책을 읽는 본인 기분도 어두워질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럼에도 영국의 오만한 생각과 판단으로 인해 식민지 거주민들의 저항은 기적적으로 영국의 패배로 끝이 났고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역사를 썼다.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전쟁 후에도 친인척들이 영국에 있거나 영국과 아메리카를 왕복하며 바쁘게 사는 상황 때문에 ‘신생국으로서의 미국’이 제대로 운영될 것인가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노예제가 당연히 시행되고 있던, 영국보다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이 더욱 노예들에게 가혹했던 그 시대에 이미 ‘흑인, 백인, 회색인 모두 군인들에게 함부로 검문당할 이유가 없다’라며 기고했던 보스턴 가제트 신문의 기고문에서 볼 수 있듯 아메리카 식민지 거주민들의 생활방식은 자유 속에서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으고 새로운 인생의 모험을 향해 움직이는 삶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사회였고 이것을 꿈꾸며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함께 어울리며 청교도 정신으로 근검절약하거나 혹은 불량스럽게 살더라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을 유지하면서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린 인재들이 처음부터 확고히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 헌법이라는 시스템을 박아 넣으면서 진통을 최소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한 나라는 없고 미국 역사에도 숱한 암흑기와 안타까움, 절망이 가득한 시기가 있었다. 당장 건국 당시엔 미국이라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헌법에서 흑인 노예의 권리까지 인정해주지 않은 한계점(그러나 이건 에이브러햄 링컨이 깨부쉈다!)을 언급한 부분을 비롯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허나 그걸 감안해도 동시대의 전근대 국가들과 미국의 사회 분위기는 차원이 달랐다. 기적적인 국가 건국 스토리와 “미국에 의해 시작된 1945년 이후 현대 사회의 역사” 그 자체로 우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의 이기는 미국인들이 역사 속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 간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느꼈다.

재미는 있었지만, 앞으로 계속 될 어마어마한 분량 때문에 완독하기엔 걱정이 드는 시리즈기도 하다. 미국을 증오하는 관점과 찬양하는 관점 그리고 담백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관점이 섞인 책들을 함께 섞어서 보는 것이 최고의 미국사 산책이 아닐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