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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멸의 열쇠 - 지적 흥미가 많지만 주화입마하기 쉬운 책

(책 표지와 뒷 부분)

 

 

 

*간만에 매우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물론 재미있는 만큼 불쾌하고 우려스러울만한 결론을 독자들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옮긴이인 박중서 번역가님과 검수를 맡은 한동일 박사님도 이런 멘트를 남긴 바 있다.

 

전 지구의 20~30%의 신앙을 담당하는 그리스도교의 초창기 역사 그것도 누군가에겐 그저 그리스도교를 창시한 사람 하나로 여기겠지만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와 점진적 낙관론자와 온건한 회의주의자들 그리고 독실한 신앙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동방교회 등 모든 종파를 다 합쳐서)들에겐 우주를 구원할 슈퍼 히어로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결론까지 내린 이 책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으니.

 

일단 그리스도교의 비밀을 밝힌다고 쓰여 진 책들은 모두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그 주제에 대해 열렬히 찬양하는 열성 추종자들도 양성했다. 한편으론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겐 냉소적 평가를,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겐 적대감과 절망감을 심어준 것이었다. 태생부터 어쩔 수가 없는 운명이다. 이러한 매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다큐멘터리로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시대정신이 있고 소설과 영화로는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천사와 악마등이 있다. 작게는 신앙을 가진 자들이여, 당신들이 믿는 그리스도란 존재는 실은 이런 존재였으니 다르게 생각하십시오.”라고 다그치는 것부터, 크게는 그리스도교 자체가 다른 종교를 짜깁기한 쓰레기이고 2천년 동안 사람들은 속고 살았기에 이제는 제발 정신 차리세요.”라고 공격하는 용도다. 물론 가장 무서운 건 후자의 주장에 예수는 존재한 적도 없는 가짜 인물인데 있다고 거짓말한 기성 종교는 싹 다 아웃!”이라는 주장까지 덧붙이는 것. 가장 유명한 것이 예수는 신화다라는 악명 높은 책이 아닌가?

 

사실 이런 전통(?)은 꽤 오래됐다. 1780년대, 콘스탄틴 프랑수와 드 샤 세브 드 볼니 백작(Constantin François de Chassebœuf, comte de Volney)과 샤를 프랑수와 드퓌(Charles Francois Dupuis)라는 두 사람이 원조라고 볼 수 있다. 줄여서 볼니 백작드퓌 교수로 불리는 이들은 계몽주의로 근세에서 근대로 이동하는, 프랑스 혁명을 앞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계몽적인 합리적 인본주의가 하층민들을 억압하고 착취나 하는 악한 구시대적 질서를 필히 없애야 한다는 일념 하에 비교종교 방법론 혹은 종교학의 비교방법론(Comparative religion methodology)’을 만들어낸 것이 시초다.

 

이 종교비교 방법론이라 불리는 이론(?)은 말 그대로 어떤 존재에 대한 표절이 존재하면 그 존재는 표절일 것이라는 쌈빡()한 논리다. “AB에는 유사점이 있다. 그런데 AB를 모방한 것이다. 그런고로 AB는 모두 허구다.”라는 점으로 각종 사회 규범에 대한 공격은 물론이고 최종적으론 예수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관점을 제시한 최초의 관점이다.

(내용에 대한 출처 : https://bitl.tistory.com/43?category=1075706)

 

시대정신, 다빈치 코드, 성배와 칼, 예수는 신화다 등의 반그리스도교를 넘어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정치적 올바름(개인적으론 이 용어로 번역된 것이 정말 싫다. 이 사상의 현재 횡포로 볼 때 정치적 조교주의, 정치적 교정주의로 재번역해야 옳다)에게 큰 도움을 준 이런 사상들의 원류는 볼니 백작과 드퓌 교수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다시 이 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꾸준히 언급하는 것은 이교 연속 가설이다. 이 세상 모든 예술 작품과 제도, 법은 예전의 누군가가 만든 것을 모방하거나 이어온 것처럼 그리스도교와 예수 역시 고대의 다른 신앙들에게서 가져온 것들이 많고 아예 초창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고대 유럽 대륙에 존재했던 다른 신앙들의 특수한 행위, 물건 등을 교세 확장을 위해 차용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위의 주장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렇다. “얘들아, 너희들은 속고 살았어. 예수님인지 뭔지 하는 인간이 행한 성만찬이란 거 다 이교도들이 먼저 하던 건데 표절한 거야. 피를 마시라는 거는 디오니소스도 그런 말 했고 고대의 종교에서 사용된 특이한 포도주는 술이 아닌 특수한 영약이었어. 그 영약을 마시면 정말 신비한 체험이 가능해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것 일 텐데 그걸 잘 사용하는 존재들이 여성들이었거든. 초창기 그리스도인들 중엔 여성들이 주도한 게 많잖아? 그런데 근세 마녀 사냥과 고대 로마제국 붕괴 이후 여성들은 다 박살나고 영약 포도주들은 사라지고 지금 너희들은 꼴통 같은 종교집단에게 휘둘리며 2천년을 허송세월 하며 살았다. 사후세계니 기적이니 그딴 거 없으니까 제발 헛소리 좀 그만 해. 뭐 내 옆에서 조언해준 신부님들도 어떤 건 인정하는 군! 아무튼 내가 볼 때 증거가 많으니 도망갈 곳이 없을 거야. , 종교를 버리라는 말은 안 할 테니 좋은 말 할 때 내 말을 들어주길 바래. 나는 교황님을 끌고 가서 그 영약을 함께 마실 각오도 하고 있어.” 거의 그렇다. 위의 말이 너무 과격한 비난 아니냐고? 솔직히 말해서 저게 맞는 거 같다. 존댓말로 포장된, ‘초음속 미사일의 도시 폭격이나 다를 바 없었다.

 

책 자체는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우 재밌고 흥미롭고 악명 높은 좌파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의 고발 영화들처럼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배경도 많이 바뀌고 루브르 박물관과 에스파냐와 그리스의 고대 유적들부터 터키에서 발굴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거대 구조물인 괴페클리 테페까지 언급된다. 약초와 그리스어에 통달한 가톨릭 사제와의 대담도 흥미롭고 그 사제조차 고대의 비슷한 부분이 그리스도교의 제도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 못했다. 어쩌면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사람인지라 당시 제국 동부에서 유행하던 다른 종교의 장점을 그리스도교에 접목시킨 걸수도 있겠다. 이교 연속 가설이란 것이 원래 그런 취지로 시작된 것이니.

 

그러나 아무리 내용이 좋고 의도가 좋다 해도 결론이 안 좋거나 문장에서 느껴지는 공격성을 발견하면 읽는 사람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역사학계에선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나 경향에 대해 결론을 함부로 내리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내린다. 예를 들면 고대 말기에 일어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에 대한 것인데 여기선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확정지은 테오도시우스 1세 대제를 고대의 이교도 지식을 파괴한 진범인 듯 확정한다. 정작 더 열심히 역사를 들이판 곳에선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이슬람 제국의 의 초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까지 도서관 파괴라는 비극의 용의자로 추정하는데 이 책은 로마 제국 말기의 그리스도인들을 파괴에 미친 괴물로만 보았다. 애초에 공격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후반에 고대의 신비를 파괴한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된 이탈리아의 자유운동가로 알려진 조르다노 브루노를 변호하는 것도 그렇다. 학계에선 조르다노 브루노에 대해 마냥 위대한 선구자로 찬양하기엔 그의 사상 자체에 위험한 부분이 많으며 과학적 합리주의였던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시각을 비과학적인 신비주의로 해석했다며 비판하는 부분도 있다. 이 두 떡밥은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유명한 무기다.

 

또한 이 책의 서문을 쓴 사람은 하필이면 악명 높은 그레이엄 핸콕이다. 역사학계에선 철저하게 헛소리만 나열하는 호사가인 그 사람이다. 정작 음모론자들이나 선택적 반종교주의자들에겐 그레이엄 핸콕을 위대한 스승으로 여길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추천하면서 핸콕이란 사람부터가 어린 시절 당했던 그리스도교 신앙 선배들의 자신에 대한 만행을 기억하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결국 사람의 마음이 세상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었다.

 

딱 하나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핸콕은 피도 눈물도 없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같은 극무신론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종교 그 자체에 대해선 유화적으로 보는 정도다. 조던 피터슨 교수도 이 책을 좋게 평가했는데, 나는 이것이 그의 아쉬운 실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피터슨 교수를 좋아하진 않지만 세계적인 광풍을 자아내고 있는 무서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일부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 거만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정도다. 아무튼 피터슨 교수는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힌다고 밝혔는데 그 댄 브라운의 저작물이 위에서 언급한 그 악명 높은 다빈치 코드다. 아무래도 대중성을 갖춘 재미있는 책으로 본 것 같은데 극단적인 반그리스도교적인 책들에 비해 불멸의 열쇠는 그나마 덜 공격적인 것이 유일한 장점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피터슨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핸콕, 도킨스, 히친스와 달리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인생을 사는 자세나 서구권의 기독교적 전통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 사람이다.

 

아무튼, 이 책을 저술하면서 저자 브라이언이 호소한 고전 문학과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대한 학생들의 학구적 관심이 없는 것이 슬프다는 부분만큼은 공감했다. 그는 진정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선 고대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알아야하는데 이를 위해선 필히 고대의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엔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한탄한다. 이 부분은 나도 동감한다. 유일하게 내가 책에서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다만 그리스인들의 사상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부분, 특히 고대 그리스 철학 > 초기 그리스도교의 지혜를 비교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다. “위대한 그리스인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 일이 없어. 당신들은 토마스 불핀치가 엮은 이상한 짜맞추기 놀이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많이 나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반그리스도교 서적은 물론이고 이 책에서도 고대의 지식은 위대하고 완벽하진 않지만 진리에 가까운 신비한 보물 그 자체였는데 남성우월주의적인 로마제국과 그 뒤를 이은 고대-중세 가톨릭 교회에 의해 파괴당했다고 호소한다. 그런데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완벽하고 대단한 존재라면 왜 그리스도교에게 패했을까?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정한 로마 황제와 귀족들이 뒤를 봐줘서? 그렇다고 보기엔 고대 특유의 현대 정보화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냉소적인 삶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이교도들의 한계를 간과하는 것 같다. 책에서도 다루지만 그리스도교만 악당인 게 아니었다. 데메테르-디오니소스 신앙을 공격 한 것은 기원전 로마 공화국, 야누스와 유피테르를 신으로 모신 그 로마 공화국이 이미 했었다. 모든 문화와 제도, 종교는 서로 닮고 베끼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뉘앙스의 다름으로 인해 불쾌한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글에서 드러나는 최종 목적과 결론 부분을 읽는 독자의 마음일 것이다.

 

또 분명 초반엔 엘레우시스 밀교를, 고대의 묘지 맥주와 데메테르 신앙을 찬미하는 것 같아보이더니만 어느 새 이 책의 주인공은 데메테르 여신과 그의 딸 페르세포네가 아니라 무아지경의 신인 미청년이자 무서운 약쟁이() 디오니소스로 변해 있었다. 디오니스소스가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이 있어서 예수는 디오니소스의 모방꾼(정확히는 지중해 동부의 이교도들을 설득하기 위해 요한 복음서의 저자가 그리스인들이 듣기 좋게 예수님의 기적을 디오니소스가 행했다는 식으로 홍보한 것이라고 책에선 묘사한다)이라고? 그래서 그저 신비로운 대단한 약물을 마시고 결론적으론 미치광이가 될 뿐인 의식이 본질인 고대의 종교가 최고라는 뜻 아닌가? 여성과 노예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퍼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 대단한 로마제국의 수십만 신들이 예수 하나를 당해내지 못했을까? 왜 로마가 부랴부랴 그리스도교를 공인해야 했나? 만만치 않게 순교 당하고 나름 내세지향적인 신앙이었던 무적의 태양신 신앙과 미트라 신앙 그리고 이란에서 발흥한 마니교와 1세기 유대 지방에서 흥했던 가짜 구세주 유대인들은 왜 실패했냐는 것이다. 이 점은 그리스도교가 특출 나게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 책은 결국엔 초반에 그리스도교를 깎아내린 점에서 완벽한 무신론자가 아닌 이상 이 책을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는 여지를 남겨줬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러한 책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우려한다.

 

정말 저자의 노력과 어마어마한 참고문헌들과 각종 그리스어 문장과 단어들 그리고 시각자료들이 너무나도 아까운 책이다. 의도와 내용이 좋아도 결론과 목적이 불순한 것 같아서 말이다.

 

 

(부록 자료들은 너무나도 알차서 한편으론 너무나도 아쉽다)